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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살인의 추억 : 연쇄살인을 쫓는 형사들의 소진, 어둠과 일상, 블랙코미디가 뒤섞인 독특한 수사극, 한국형 수사극의 새 지평, 장르·연출·사회비평을 한 번에 담은 영화, 기억의 영화

by 조이나더 2025. 12. 8.

살인의 추억

영화 「살인의 추억」은 미제 연쇄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들의 시선을 통해,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공포와 무력감, 그리고 ‘진실에 닿지 못한 채 남는 상흔’을 밀도 있게 그려낸 범죄 드라마다. 장르적으로는 수사 스릴러지만, 결국 범인을 잡는 쾌감 대신, 끝내 닿지 못한 진실과 그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남기는 영화다.

끝내 해결되지 않는 연쇄살인을 쫓는 형사들의 소진

1986년 시골 소도시 논두렁에서 젊은 여성이 성폭행과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경험 부족한 지방 형사 박두만과 조용구의 악몽 같은 수사가 시작된다. 이들은 눈빛만 보고 범인을 가려낸다고 믿거나, 고문과 조작으로 자백을 짜내는 등 엉성하고 폭력적인 수사로 사건을 덮으려 하지만, 비 오는 밤에 같은 라디오 신청곡이 나올 때마다 여성이 살해되는 패턴이 드러날수록 사건은 점점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다. 서울에서 내려온 서태윤 형사가 과학수사와 패턴 분석으로 접근하면서 한때 유력한 용의자에게 다가서는 듯 보이지만, 국외 감정 DNA 결과가 불일치로 나오며 모든 확신이 무너지고, 사건은 미제로 남은 채 형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진다.

어둠과 일상, 블랙코미디가 뒤섞인 독특한 수사극

이 영화의 특징은, 잔혹한 범죄 서사 속에도 일상의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블랙코미디를 적극적으로 섞어 넣는 독특한 톤에 있다. 수사 현장에서 발자국 흔적을 트랙터가 밟고 지나가거나, 형사들이 논두렁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구르는 장면, 형사가 학교 운동장에서 취조하다 발차기로 학생을 넘어뜨리는 장면 등은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아내며, 그 시대 수사의 허술함과 폭력성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촬영과 미장센 측면에서는 안개 낀 들판, 좁은 파출소와 공장 내부, 비 오는 밤 도로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시골의 답답하고 눅눅한 공기와, 진실에 가닿지 못하는 수사의 맴돎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한국형 수사극의 새 지평

「살인의 추억」은 실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범인의 정체를 끝까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장르적 쾌감보다 역사적·사회적 상흔에 방점을 찍는 수사극의 방향을 제시했다. 폭력적인 군사정권 말기의 분위기, 미비한 과학수사, 중앙과 지방의 격차,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소외되는 현실 등은, 단순한 범죄 재현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압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이후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실패한 수사’, ‘미제로 남은 사건’, ‘형사의 상처와 집착’을 다루는 수많은 텍스트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고, 봉준호의 국제적 명성을 연 데뷔작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장르·연출·사회비평을 한 번에 담은 영화

영화과에서 이 작품이 단골 교재가 되는 이유는, 장르 문법과 사회비평, 인물 드라마가 균형 있게 결합되어 있어 분석 포인트가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직감과 폭력을 믿는 지방 형사 박두만, 절차와 증거를 중시하는 서태윤의 대비는, 캐릭터 설계와 서사의 대비 구조를 설명하기 좋은 예이며, 두 인물이 점점 서로를 닮아가고 무너지는 과정은 “수사가 인물을 어떻게 소진시키는가”를 보여 주는 심리 드라마로 읽힌다. 또한 반복되는 비·논두렁·터널·철길, 프레임을 가리는 기둥과 창 등은 미장센·촬영 수업에서 상징과 공간 활용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고, 마지막에 카메라를 정면 응시하는 클로즈업은 관객의 위치와 윤리적 시선을 토론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진범이 밝혀진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억의 영화’

실제 사건의 범인이 영화 개봉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특정되었음에도, 「살인의 추억」은 여전히 ‘미제로 남은 사건’의 감각을 생생하게 보존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범인을 특정하기보다, 답을 찾지 못한 형사와 사회가 어떤 상흔을 안고 시간을 통과하는지, 그리고 그 상흔이 어떻게 개인의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평범한 얼굴의 남자를 언급하는 소녀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박두만의 시선은, “악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일지 모른다”는 섬뜩한 메시지와 함께, 관객 자신이 그 시대와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가를 되묻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