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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쥐 : 윤리의 붕괴, 파국적 로맨스, 뱀파이어 장르를 빌려 신앙·욕망·도덕을 실험, 박찬욱식 블랙코미디, 신앙과 욕망을 동시에 응시하게 만드는 파국의 러브스토리

by 조이나더 2025. 12. 9.

영화 박쥐

 

영화 「박쥐」는 가톨릭 신부가 실험 치료 도중 뱀파이어로 변하면서, 신앙·욕망·죄책감 사이를 오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욕망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파국적 멜로드라마다. 공포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랑·윤리·신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박찬욱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숙고된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성직자가 뱀파이어가 될 때 벌어지는 윤리의 붕괴

주인공 상현은 치명적인 바이러스 치료 실험에 자원한 끝에, 수혈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어 살아난 가톨릭 신부다. 그는 이적을 행한 성자로 추앙받으면서도, 피와 육체적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가 되고, 신앙과 금욕의 가르침은 곧장 육체 본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어린 시절 친구 강우의 집에 머물며 강우의 아내 태주와 금지된 관계에 빠져드는 과정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제’라는 정체성이 무너지고,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앙과 윤리를 계속 변주하는 인물의 내면 붕괴를 보여준다.​

사랑과 공모, 그리고 피로 이어진 파국적 로맨스

상현과 태주의 관계는 처음에는 폭력적인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태주의 욕망과, 연민·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현의 혼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상현이 강우를 살해하고 태주와 공모자가 되면서, 둘의 관계는 더 이상 피해자·구원자 구도가 아니라, 서로의 어둠을 확대 증폭시키는 공범 관계로 변질된다. 상현이 여전히 살인을 망설이며 최소한의 윤리선을 붙잡으려 애쓴다면, 태주는 뱀파이어가 된 뒤 살의를 거리낌 없이 즐기고, 두 사람의 균형이 깨지면서 사랑은 곧 서로를 소멸시켜야만 끝낼 수 있는 파국으로 향한다. 결국 태주와 함께 해 떠오르는 들판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결말은, 사랑과 구원, 자기파괴가 한 번에 겹쳐진 아이러니한 ‘순교’처럼 연출된다.​

뱀파이어 장르를 빌려 신앙·욕망·도덕을 실험

「박쥐」는 기본적으로 뱀파이어 장르의 문법—피, 햇빛, 초월적 힘, 영생—을 따르면서도, 그 장치를 ‘인간의 욕망과 신앙의 긴장’이라는 주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피는 단순한 공포 요소가 아니라, 성체성사·희생·구원을 상징하는 기독교의 피와 겹쳐지며, “타인의 피를 마셔야만 사는 성직자”라는 설정은 신앙의 아이러니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또, 서양 뱀파이어 신화를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한국적 가족 구조와 유교적 죄책감, 병원과 단칸방, 고기압스러운 실내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장르의 상징들을 낯선 방식으로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박찬욱식 블랙코미디

영화는 폭력과 피, 성적 장면이 매우 노골적이지만, 곳곳에 블랙코미디를 삽입해 관객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뒤틀어 놓는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이 병실에서 피주머니를 몰래 빤다든지, 강우의 유령이 두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 휠체어에 실려 있던 시어머니가 점점 신체적 반응을 되찾는 과정은, 공포와 웃음이 동시에 작동하는 전형적인 박찬욱식 유머다. 이처럼 멜로드라마·호러·코미디·신체 영화가 한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톤 전환을 일으키면서, 관객은 인물의 선택을 단순히 ‘악’으로 단정 짓기보다는, 욕망을 둘러싼 복잡한 감정과 윤리적 모호성을 끝까지 함께 겪게 된다.​

신앙과 욕망을 동시에 응시하게 만드는 파국의 러브스토리

「박쥐」는 뱀파이어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신앙과 욕망, 사랑과 폭력, 구원과 자기파괴가 얼마나 쉽게 뒤엉킬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다. 상현과 태주의 비극은, 선한 의지나 종교적 신념이 있다고 해서 인간 안의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눌린 욕망이 다른 방식으로 폭발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잔혹한 우화처럼 읽힌다. 피와 살, 웃음과 공포, 기도와 저주가 뒤엉킨 이 영화는, 장르적 쾌감과 불편한 성찰을 동시에 안겨 주며,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남게 하고, 어디서부터 괴물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영화의 문제작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