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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 계급 혁명 서사, 잘려진 칸마다 드러나는 계급과 소비의 풍경, 계획된 혁명과 ‘균형’이라는 이름의 잔혹한 통치, 파국 이후의 한 발, 혹은 처음으로 내려선 바깥, 멈춰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은유

by 조이나더 2025. 12. 9.

설국열차

영화 「설국열차」는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이 탑승한 열차 내부를 계급별로 분할된 하나의 축소 사회로 설정하고, 꼬리칸에서 맨 앞 칸까지의 전진을 계급 투쟁과 인식의 여정으로 형상화한 디스토피아 SF다. 봉준호 특유의 블랙유머와 장르 쾌감이, 종말 이후에도 계속되는 불평등과 통제의 구조에 대한 냉혹한 알레고리와 결합해, 동시대 자본주의 비판 영화 중 가장 직관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꼬리칸에서 기관차까지 이어지는 계급 혁명 서사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기후 조절 시도가 실패해 지구가 빙하기로 돌변한 뒤, 인류의 생존자는 영구기관 열차 설국열차 안에서만 살아남는다. 열차는 맨 뒤 꼬리칸의 극빈층부터 앞쪽의 사우나·수영장·클럽·학교·부유층 객실, 그리고 맨 앞의 기관차에 이르는 계급 구조로 나뉘어 있고, 꼬리칸 사람들은 단백질 블록에 의존하며 비인간적인 통제를 받는다. 주인공 커티스는 멘토 길리암의 권유로 반란을 일으켜, 보안 전문가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를 포함한 동료들과 함께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며, 열차의 숨겨진 풍경과 잔혹한 진실을 목격한다.

잘려진 칸마다 드러나는 계급과 소비의 풍경

반란군이 지나치는 각 칸은, 열차 밖의 세계를 은유하는 ‘움직이는 사회학 교과서’처럼 기능한다. 초반 꼬리칸의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서 출발한 카메라는, 새하얀 학교 칸, 형광색이 번쩍이는 클럽, 미용실과 사우나, 초밥 레스토랑 등 점점 화려해지는 공간을 통과하며, 상층부가 유지하는 위생·교육·문화·쾌락의 세계를 보여 준다. 특히 학교 칸에서 선생과 아이들이 윌포드를 찬양하며 총기를 꺼내 학살극으로 돌변하는 장면은, 이데올로기와 폭력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 신앙이 언제든 잔혹함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계획된 혁명과 ‘균형’이라는 이름의 잔혹한 통치

열차의 창조자 윌포드를 만난 커티스는, 자신이 이끌었던 반란이 사실 길리암과 윌포드 사이에서 미리 거래된 ‘인구 조절 프로그램’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혁명이 체제를 뒤집는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설계하는 ‘통제된 폭발’일 수 있다는 냉혹한 설정으로, 저항과 혁명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묻는다. 윌포드의 “열차가 유지되려면 일정 수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희생을 정당화하는 권력자의 언어를 극단적으로 형상화하며, 커티스에게 ‘기관차를 이어받아 같은 구조를 반복할 것인지, 열차 자체를 멈출 것인지’라는 잔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파국 이후의 한 발, 혹은 처음으로 내려선 바깥

결국 남궁민수는 열차 밖의 눈 덮인 산과 빙벽에서 ‘녹는 흔적’을 발견했다며, 열차 시스템 전체를 폭파해 바깥으로 나가자는 계획을 제안한다. 커티스와 남궁은 아이들을 보호하며 폭발을 감수하고, 열차는 탈선·전복되어 대부분의 승객이 사망하지만, 요나와 어린 소년 티미는 살아남아 밖으로 나와 설원을 걸어가는 북극곰을 목격한다. 이 결말은 기존 질서를 조금씩 고치는 ‘개혁’이 아니라, 아예 폭파시키고 불확실한 바깥으로 나서는 급진적 선택을 그리면서, “열차 안에서의 안전한 불평등”과 “밖에서의 위험한 가능성”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열린 질문을 던진다.

멈춰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은유

「설국열차」는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독창적 설정을 가진 SF 블록버스터이면서도, 계급·환경·통치 구조에 대한 정치적 알레고리를 노골적일 만큼 직선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꼬리칸에서 기관차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계급 상승기’가 아니라, “어떤 위치에 서더라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폭력은 계속 재생산된다”는 깨달음으로 귀결되고, 그 구조를 끊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 열차를 멈추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채 안정을 택할 것인지, 위험을 감수하고 밖으로 발을 내딛을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와 더불어 오늘의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은유로서, 한 번쯤 반드시 마주해 볼 가치가 있는 현대 SF영화의 중요한 이정표다.